향토문화유적소개 열읍원우사적과 전북원우록에는 1612년 유림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기록, 익산지역에 죽림서원(1626)과 화산서원(1657)이 설립되어지는 것을 볼 때 화암서원도 이 시기에 설립된 것으로 보여짐. 1871년(고종8)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가 1966년에 사우 건립. 고려말 문신인 남촌 이공수를 비롯해 곤암 소세량, 양곡 소세양, 수암 이약해의 위패를 모심. 현재도 화암서원보존회를 조직하여 1년에 2회(음2월, 8월 중정일)의 제향을 하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산 중턱에 터를 고르고 거칠게 치석한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조성하였으며 원형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2칸 규모 정자. 남서향으로 배치되었으며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근래에 오지기와로 번와함. 전체적d,로 단정한 모습이며, 목가구기법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기법을 유지하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전우선생(1841~1922)은 조선 말기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1905년 늑약지변에 청참오적을 상소하고, 포고문을 발표하였으나 무일사문 의 무위로 끝남에 승부이부해의 마음으로 왕릉도에 들어감. 이후 후학을 육성하고 항일정신을 고취시키며 민족정기를 드높이는 일에 힘썼으며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후 익산의 선영에 묻힘. 그 묘역과 제각(현산재)
향토문화유적소개 대원군이 병인양요(1866)때 척화의지를 발표, 신미양요(1871) 이후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움. 1882년 임오군란때 대원군의 실각으로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었다가 1915년 이후 발견되고 있음. 여산척화비도 이러한 과정속에서 현존하는 것으로 판단되나 정확한 제작연대는 알 수 없음.
향토문화유적소개 문수사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본존불인 목조여래좌상으로서 원래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것을 극락전을 새로 지어 이전함. 좌우 협시는 최근작품임.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과 오똑한 콧날 굳게 다문 입 등 조선후기 17세기경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 가지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화산 서쪽산 중턱에 터를 고르고, 현천저수지를 바라보며 남서향하여 세워짐. 초석은 대리석을 정교하게 치석한 장초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움.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함석차양을 덧달았음, 비교적 전통기법을 유지하면서 당시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음.
향토문화유적소개 표고 214m 주봉과 서남쪽 공짜기를 감싸는 석성. 산탁에 의해 축성, 일부 협축 흔적이 살펴짐. 대부분 붕괴되었고 북쪽성벽 일부가 잘 남아있는데 폭은 4m정도이고, 잔존높이는 2m내외임. 성내에서 격자문, 어골문, 집선문계 평기와 및 토기편 등 수습됨.